법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기업들은 벌써 파트너를 정하고 있습니다. 은행, 빅테크, 가상자산 거래소, 카드사까지 업권을 가리지 않고 손을 맞잡는 이 낯선 풍경의 이름은 바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법제화를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이 합종연횡 전쟁을 정리해봤습니다.
1. 법보다 빠른 기업들의 움직임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한 디지털 자산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이 독특합니다. 이를 규율할 법(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은 아직 국회에서 논의 중인데, 정작 기업들은 이미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물밑 작업에 한창입니다. 5대 금융지주는 물론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증권사, 카드사, 핀테크 기업, 가상자산거래소까지 저마다 파트너 찾기에 나서고 있는 겁니다.

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들이 먼저 움직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핵심 설계가 법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법 없이 컨소시엄을 확정하고 공식화하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다들 뒤처지지 않으려 서두르는 모습입니다.
2. 빅테크의 파격 행보 — 카카오는 서클과, 네이버는 두나무와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국내 양대 플랫폼 기업의 행보입니다.
카카오그룹(카카오·카카오페이·카카오뱅크)은 지난 7월 23일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중 하나인 미국 서클(Circle)과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물론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 글로벌 결제·송금, 토큰화 금융 서비스까지 폭넓게 협력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미국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와 손을 잡으며 글로벌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손을 잡았습니다. 두 회사는 단순 협업을 넘어 조인트벤처(JV) 설립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장에서는 네이버페이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두나무의 업비트에서 이를 유통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래소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되면 압도적인 발행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이런 전략의 배경입니다.
3. 은행 vs 빅테크, 아직 안 끝난 주도권 다툼
문제는 정작 법의 밑그림조차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발행 주체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 금융위원회는 ‘은행 과반 지분(50%+1주) 컨소시엄’부터 발행을 허용한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TF는 핀테크·플랫폼·블록체인 업체도 발행사에 포함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안도걸 의원은 “특정 업권이 지분 50% 이상을 강제하는 입법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 절충안으로 최근에는 “제도 도입 초기엔 은행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우선 허용하되, 기술 기업이 최대주주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은행에만 적용할지, 비은행에도 허용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에 여당 안도걸 의원과 야당 김은혜 의원이 각각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발의하며, 이른바 ‘한국판 지니어스법’을 둘러싼 여야 경쟁 구도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4. 이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합종연횡은 해외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 흐름입니다. 지난 7월 1일 비자·마스터카드·코인베이스·블랙록·구글 등 14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글로벌 컨소시엄 ‘오픈스탠더드’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오픈USD(OUSD)’를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삼성전자, 신한금융그룹, 두나무 등 국내 13개 기업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결제·금융·빅테크가 업권을 넘나들며 손잡는 게 이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표준 전략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5. 이 흐름, 어떻게 봐야 할까
첫째, 법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지금의 제휴 구도가 뒤바뀔 수 있습니다. 은행 중심으로 확정되면 카카오·네이버의 파트너십도 은행권과의 추가 연대가 필요해질 수 있고, 반대로 비금융권 참여가 넓어지면 지금의 빅테크 주도권이 더 강화될 수 있습니다.
둘째, 준비자산 관리의 안전성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발행사가 자회사를 100% 지분으로 보유하더라도, 원화 연동을 위한 준비자산을 단일 은행에만 예치하는 게 안전한지에 대한 우려가 있어, 복수 은행 간 협업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나옵니다.
셋째, 국내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으로 다른 가상자산을 바로 매수할 수 있지만, 국내는 아직 제도화가 안 돼 ‘거래소 제휴 은행 계좌 입금 → 현금 이체 → 거래소 매수’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법제화가 이런 구조를 얼마나 단순화시킬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정리하며
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카카오는 서클과, 네이버는 두나무와, 그리고 은행권은 자기들끼리 컨소시엄을 짜는 이 어지러운 합종연횡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들의 절박함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이 모든 판도를 다시 정리할 마지막 변수는 국회에서 확정될 법안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은행 중심과 빅테크 중심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의견 남겨주세요.
본 글은 공개된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정보 제공 목적의 글이며, 특정 기업이나 서비스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관련 법제화 및 사업 구조는 계속 변동될 수 있으므로 최신 소식을 별도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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